師說
韓愈(唐 768~824)
古之學者必有師. 師者, 所以傳道․受業․解惑也. 人非生而知之者, 孰能無惑? 惑而不從師, 其爲惑也終不解矣. 生乎吾前, 其聞道也固先乎吾, 吾從而師之. 生乎吾後, 其聞道也亦先乎吾, 吾從而師之. 吾師道也,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 是故無貴無賤, 無長無少, 道之所存, 師之所存也. 嗟乎, 師道之不傳也久矣, 欲人之無惑也難矣! 古之聖人, 其出人也遠矣, 猶且從師而問焉. 今之衆人, 其下聖人也亦遠矣, 而恥學於師. 是故聖益聖, 愚益愚, 聖人之所以爲聖, 愚人之所以爲愚, 其皆出於此乎?
愛其子, 擇師而敎之, 於其身也, 則恥師焉, 惑矣! 彼童子之師, 授之書而習其句讀者, 非吾所謂傳其道解其惑者也. 句讀之不知, 惑之不解, 或師焉, 或不焉, 小學而大遺, 吾未見其明也.
巫醫樂師百工之人, 不恥相師. 士大夫之族, 曰師, 曰弟子云者, 則群聚而笑之. 問之, 則曰, 彼與彼年相若也, 道相似也. 位卑則足羞, 官盛則近諛. 嗚呼, 師道之不復可知矣! 巫醫樂師百工之人, 君子不齒, 今其智乃反不能及, 其可怪也歟!
聖人無常師, 孔子師郯子, 萇弘, 師襄, 老聃. 郯子之徒, 其賢不及孔子, 孔子曰, “三人行, 則必有我師.” 是故弟子不必不如師, 師不必賢於弟子, 聞道有先後, 術業有專攻, 如是而已.
李氏子蟠, 年十七, 好古文, 六藝經傳皆通習之, 不拘於時, 學於余. 余嘉其能行古道, 作師說以貽之.
옛날에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스승이 있었다.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면 누군들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의혹이 있으면서 스승을 좇(아 배우)지 않는다면 그 의혹됨은 끝내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앞에 태어나서 그 도를 들은 것이 진실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좇아 스승으로 삼을 것이요, 나보다 뒤에 태어나서 그 도를 들은 것이 또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좇아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내가 스승으로 삼는 것은 도이니,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늦게 태어난 그 연수를 어찌 따지겠는가? 이렇기 때문에 (신분의) 귀천도 없고, (나이의) 많고 적음도 없이, 도가 있는 곳에 스승이 있는 것이다. 아! 스승의 도가 전해지지 않은지 오래되어 사람의 의혹을 없애고자 하나 어렵다. 옛날의 성인은 그 뛰어남이 보통의 사람보다 월등하여도 오히려 다시 스승을 좇아 물었는데, 지금의 사람들은 그 모자람이 성인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나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한다. 이 때문에 성인은 더욱 성스러워지고 어리석은 사람은 더욱 어리석어지니, 성인이 성인이 되는 이유와 우인이 우인이 되는 이유는 그 모두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 자식을 사랑함에 스승을 가려 가르치되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는 스승삼기를 부끄러워하니, 이는 미혹된 것이다. 저 동자의 스승은 책을 가르쳐주어 구두를 익히게 하는 자이니, 내가 말하는 도를 전하고 의혹을 풀어준다는 자는 아니다. 구두를 알지 못함과 의혹을 풀지 못함에 혹은 스승삼고 혹은 스승삼지 아니하여 작은 것은 배우고 큰 것은 버리니, 나는 그 현명함을 보지 못하겠다.
무당과 의원, 악사와 백공의 사람들은 서로 스승삼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사대부의 집안들은 스승이라 하고 제자라고 말하면 여럿이 모여 비웃는다. 그 이유를 불으면, 저와 저는 나이가 서로 비슷하고 도가 서로 비슷하다. 지위가 낮은데 스승삼으면 부끄러울 만하고, 벼슬이 높은데 스승삼으면 아첨에 가깝다고 한다. 아! 사도를 회복하지 못함을 알 수 있겠다. 무당과 의원 악사와 백공의 사람은 군자들이 끼워주지 않으나 지혜가 마침내 도리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니, 괴이한 일이다.
성인은 일정한 스승이 없다. 공자는 담자와 장홍과 사양과 노담을 스승으로 삼았다. 담자의 무리는 그 어짊이 공자에 미치지 못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세 사람이 동행하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하셨으니, 이러므로 제자가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이 아니요, 스승이 반드시 제자보다 나은 것이 아니다. 도를 들음에 선후가 있고, 술업에 전공이 있어서이니, 이와 같을 뿐이다.
이씨의 아들 반이 나이 열일곱인데, 고문을 좋아하여 육예와 경전을 모두 통달하여 익혔음에도, 시속에 구애되지 않고 나에게 배우기를 청하였으므로, 나는 그가 옛날의 도를 잘 행함을 가상히 여겨 사설을 지어 준다.
스승의 날! 한유의 <사설>을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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