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시 길을 잃다 ::
 

 


스승의 날.

분류없음 | 2010/05/15 09:43 | Posted by 二由菴

師說


韓愈(唐 768~824)


之學者必有師. 師者, 所以傳道․受業․解惑也. 人非生而知之者, 孰能無惑? 惑而不從師, 其爲惑也終不解矣. 生乎吾前, 其聞道也固先乎吾, 吾從而師之. 生乎吾後, 其聞道也亦先乎吾, 吾從而師之. 吾師道也,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 是故無貴無賤, 無長無少, 道之所存, 師之所存也. 嗟乎, 師道之不傳也久矣, 欲人之無惑也難矣! 古之聖人, 其出人也遠矣, 猶且從師而問焉. 今之衆人, 其下聖人也亦遠矣, 而恥學於師. 是故聖益聖, 愚益愚, 聖人之所以爲聖, 愚人之所以爲愚, 其皆出於此乎?


其子, 擇師而敎之, 於其身也, 則恥師焉, 惑矣! 彼童子之師, 授之書而習其句讀者, 非吾所謂傳其道解其惑者也. 句讀之不知, 惑之不解, 或師焉, 或不焉, 小學而大遺, 吾未見其明也.


醫樂師百工之人, 不恥相師. 士大夫之族, 曰師, 曰弟子云者, 則群聚而笑之. 問之, 則曰, 彼與彼年相若也, 道相似也. 位卑則足羞, 官盛則近諛. 嗚呼, 師道之不復可知矣! 巫醫樂師百工之人, 君子不齒, 今其智乃反不能及, 其可怪也歟!

 

人無常師, 孔子師郯子, 萇弘, 師襄, 老聃. 郯子之徒, 其賢不及孔子, 孔子曰, “三人行, 則必有我師.” 是故弟子不必不如師, 師不必賢於弟子, 聞道有先後, 術業有專攻, 如是而已.


氏子蟠, 年十七, 好古文, 六藝經傳皆通習之, 不拘於時, 學於余. 余嘉其能行古道, 作師說以貽之.


   옛날에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스승이 있었다.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면 누군들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의혹이 있으면서 스승을 좇(아 배우)지 않는다면 그 의혹됨은 끝내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앞에 태어나서 그 도를 들은 것이 진실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좇아 스승으로 삼을 것이요, 나보다 뒤에 태어나서 그 도를 들은 것이 또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좇아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내가 스승으로 삼는 것은 도이니,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늦게 태어난 그 연수를 어찌 따지겠는가? 이렇기 때문에 (신분의) 귀천도 없고, (나이의) 많고 적음도 없이, 도가 있는 곳에 스승이 있는 것이다. 아! 스승의 도가 전해지지 않은지 오래되어 사람의 의혹을 없애고자 하나 어렵다. 옛날의 성인은 그 뛰어남이 보통의 사람보다 월등하여도 오히려 다시 스승을 좇아 물었는데, 지금의 사람들은 그 모자람이 성인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나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한다. 이 때문에 성인은 더욱 성스러워지고 어리석은 사람은 더욱 어리석어지니, 성인이 성인이 되는 이유와 우인이 우인이 되는 이유는 그 모두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 자식을 사랑함에 스승을 가려 가르치되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는 스승삼기를 부끄러워하니, 이는 미혹된 것이다. 저 동자의 스승은 책을 가르쳐주어 구두를 익히게 하는 자이니, 내가 말하는 도를 전하고 의혹을 풀어준다는 자는 아니다. 구두를 알지 못함과 의혹을 풀지 못함에 혹은 스승삼고 혹은 스승삼지 아니하여 작은 것은 배우고 큰 것은 버리니, 나는 그 현명함을 보지 못하겠다.

 

 무당과 의원, 악사와 백공의 사람들은 서로 스승삼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사대부의 집안들은 스승이라 하고 제자라고 말하면 여럿이 모여 비웃는다. 그 이유를 불으면, 저와 저는 나이가 서로 비슷하고 도가 서로 비슷하다. 지위가 낮은데 스승삼으면 부끄러울 만하고, 벼슬이 높은데 스승삼으면 아첨에 가깝다고 한다. 아! 사도를 회복하지 못함을 알 수 있겠다. 무당과 의원 악사와 백공의 사람은 군자들이 끼워주지 않으나 지혜가 마침내 도리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니, 괴이한 일이다.


 성인은 일정한 스승이 없다. 공자는 담자와 장홍과 사양과 노담을 스승으로 삼았다. 담자의 무리는 그 어짊이 공자에 미치지 못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세 사람이 동행하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하셨으니, 이러므로 제자가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이 아니요, 스승이 반드시 제자보다 나은 것이 아니다. 도를 들음에 선후가 있고, 술업에 전공이 있어서이니, 이와 같을 뿐이다.


 이씨의 아들 반이 나이 열일곱인데, 고문을 좋아하여 육예와 경전을 모두 통달하여 익혔음에도, 시속에 구애되지 않고 나에게 배우기를 청하였으므로, 나는 그가 옛날의 도를 잘 행함을 가상히 여겨 사설을 지어 준다.



스승의 날! 한유의 <사설>을 읽어 본다.

TRACKBACK ADDRESS : http://e-yuam.tistory.com/trackback/1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금진 시 두 편

분류없음 | 2010/05/07 16:07 | Posted by 二由菴

      여기에 없는 사람


                                 최 금 진


    허리 가는 미녀들이 뱀처럼 득실대는 미개한 섬도 좋고

    아무 나무에나 달라붙어 벌레처럼 종일 과일을 갉아먹을 수 있는 열대의 어느 나라도 좋다

    아무튼 나는 연금도 없고 직장도 없고

    밤마다 꿈을 꾸면 나타나 엉엉 한국식으로 우는

    오래전 죽은 내 아버지도 싫다

    주민등록증 말고는 증명할 게 없는

    가난한 친척들이 싫다

    만날 전쟁이 터질 듯 떠들어대는 텔레비전 고정출연의

    잘 싸우는 미국도 못 싸우는 북한도 그리고

    나보다 잘생긴 텔런트들도 싫다

    돈 없어 죽은 조상귀신들이 나무열매처럼 주렁주렁 열린 밤하늘이 싫다 

    머리 길게 풀어헤치고 판소리가락으로 우는 것들이 싫다

    아리고 아린 아리랑이 싫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금 내고

    내가 꼴등인 걸 자꾸 확인시키면서 거기 싸인하라 하고

    그것도 다 민주주의라고 우기는 대한민국 헌법이 싫다

    나는 어떻게 하든 여길 뜰 것이다


    우선, 비참하지만,

    팔자에 복이 될 만한 손금 하나 없는

    내 무국적의 손바닥을 여권 삼아

    이렇게 적는다


    ‘삥 뜯을 생각 마라, 나는 지금 여기에 없는 놈이다’





        애국가를 추억하며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들을 주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나는 자랑스런

    시골 구멍가게 집안의 가난한 삼대독자로 태어나

    좋은 직장과 좋은 대학과 좋은 가정을 갖지 못했으니

    그러니 이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나를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를

    맹세해주십시오


    영토, 국민, 주권…한평의 땅도 없는

    굶는 것과 자는 것 말고는 어떤 권리도 없는

    나는 어느 나라의 국민입니까

    무료급식코너의 쥐구멍 같은 창구에서도

    배식표를 뽑아 쥐는 지독한 사람들이

    산 집으로, 좀더 싼집으로 이사다니다가

    마침내 이 나라를 다 돈다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을 때가지

    삽자루 들고 땅을 파서

    미국이나 일본 곁에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새벽종이 울렸으니

    그만 일하러 가겠습니다

    망명해야 할 정부조차 없으니까요


    부디, 돌아오는 밤길에 당신과 안 마주쳤으면 좋겠습니다


    (대한사람 대한사람끼리 길이 보전하세요)




최금진 <<새들의 역사>> 중


나도 여길 뜨고 싶다. '삥' 뜯기고 싶지 않다. 끼리끼리 길이 보전하시라.

TRACKBACK ADDRESS : http://e-yuam.tistory.com/trackback/1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손목-윤제림

분류없음 | 2010/04/09 16:35 | Posted by 二由菴
    손목

                  윤제림

   나 어릴 때 학교에서 장갑 한 짝을 잃고
   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부지깽이로 죽도록 맞고 엄마한테 쫓겨났지
   제 물건 하나 간수 못하는 놈은
   밥 먹일 필요도 없다고
   엄마는 문을 닫았지
   장갑 찾기 전엔 집에 들어오지도 말라며.

   그런데 저를 어쩌나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손목 한 짝을 흘렸네
   몇 살이나 먹었을까 겁에 질린 눈은
   아직도 여덟 살처럼 깊고 맑은데
   장갑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한하운처럼 손가락 한 마디도 아니고
   발가락 하나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어찌할거나 어찌 집에 갈거나
   제 손목도 간수 못한 자식이.
   저 움푹한 눈망울을 닮은
   엄마 아버지 아니 온 식구가, 아니
   온 동네가 빗자루를 들고 쫓을 테지
   손목 찾아오라고 찾기 전엔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찾아보세나 사람들아
   붙여보세나 동무들아
   고대로 못 붙여 보내면
   고이 싸서 동무들 편에 들려 보내야지
   들고 가서 이렇게 못쓰게 되었으니
   묻어버려야 쓰겠다고
   걔 엄마 아버지한테 보이기라도 해야지
   장갑도 아니고
   손목인데.


여전하다.
단속을 피하다가 중상을 입기도 하고,
수색을 돕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해외에 계신 우리 동포여러분'들은 어떻게들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TRACKBACK ADDRESS : http://e-yuam.tistory.com/trackback/15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

분류없음 | 2010/03/22 19:40 | Posted by 二由菴

오늘 신문기사에서 ꡔ무소유ꡕ가 21억까지 올라갔다는 기사를 읽었다.

최근 저 책을 둘러싼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들려, 어제(2010.3.21) 김영승 시인의 ꡔ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ꡕ이라는 시집을 꺼내보았는데, 그 후라 그런지 더욱 씁쓸하다.


김영승 시인은 1959년 인천에서 태어났고, 1983년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어느 책에서는 중퇴라고도 한다. 몇 권의 시집을 냈는데, 2001년 9월에 낸 시집이 바로 이 ꡔ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ꡕ이라는 시집이다.


시인은 자서에서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했듯이 그는 결코 가난한 시인이 아니다.


시집에 표제작은 없이, 「극빈」이라는 시가 있는데, 한 구절이 시집의 제목과 같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극빈


  극빈

  극광 같은 극빈

  國寶 같은 극빈 극미

  절세가인의 효빈 같은

  극빈

  쾌락의 극치, 극, 극

  태극, 태극 같은 극빈


  이곳 임대아파트로 이사온 지 내일이면 꼭 1년

  월 175,300원 그 임대료가 벌써

  두 달째 밀렸네

  말렸네 나를 말렸네 피를

  말렸네, 극빈


  극빈

  무소유보다도 찬란한 극빈

 

  ‘쪽’도 많이 팔렸구나

  그래서

  쪽빛(顔色)이 쪽빛(藍色)이구나


  이것은 pun이 아니라

  정당한 진술이다‘언표’다

  극빈…


  ‘명령’이다

  극빈…


  ‘번역’이다 극빈

  ‘반역’이다 극빈


  荒原의

  body language,


  극악한 극빈.


175,300원의 임대료를 내지 못해 얼굴빛이 파랗게 질려버린, 그렇게 ‘쪽’을 판 시인의 시!

ꡔ무소유ꡕ를 꼭 ‘소유’하려는 자들은 이러한 ‘극빈’을 알까?


선거철을 맞아 다음과 같은 시도 눈에 들어온다. 「黨」이라는 작품의 전문이다.


  黨

  

  “나는 민주당이 싫어요!‘

  하고 죽은 김영승 어린이의 동상이 서 있는 인천시 연수구 동춘2동 943번지 봉재산 기슭 초가엔 오늘도 찬 바람만 불고


  나는 자유당이 싫어요, 나는 공화당이 싫어요, 나는 민정당이 싫어요…

  하고 죽은 無數한 어린이들의 무수한 동상, 그 동상들이


  여하튼

  2000년 2월 2일 수요일 현재 집권 여당은 민주당(새천년민주당)인데, 그 대통령은 金大中 이고…


  모든 黨은 다 惡黨 같고, 不汗黨 같고, 아니 惡黨이고 不汗黨이고,

  미성년자, 그러니까 19세 미만, 혹은 18세 미만, 청소년들은, 아니…들은 ‘섹스’를 즐겨서는 안 되는가, 저희들끼리, 혹은 나이가 더 많은 노론들과, 왜


  參政權이 없는가, 그렇게


  총선시민연대는 또 2차로 공천 반대 인사 명단을 발표하고, 그 당사자들은 또 뭐라고 뭐라고 해명을 하고 길길이 뛰고


  어린이들은 아직도, 나는 한나라당이 싫어요,

  

  그러면 그대는 공천 가능(환영) 人士인가?


  남녀노서 4,000만이 다

  공천 부적격자이고 또한


  黨에는 언제나 頭目이 있어―


  哲學을 같이 공부한 張信奎라는 새끼는 나한테 욕도 많이 먹었었는데, 光州 사태(?)가 발발하자 전국에 지명수배된 적이 있고 어쩌구 하더니, 어느 날 보니까 서울 마포 甲인가 乙인가에 出馬를 해 꼴등을 하고, 그러더니 옛 국민회의(현 새천년민주당) 부대변인을 하고 자빠져서 TV에 나와 뭐라고 뭐라고 또 쫑알거리다가, 그러다가 싹 없어져 버렸다. 한 때 경실련에 관여를 한 적도 있었고 해서, 아, 그런 새끼들의 길은 따로 있구나, 그 길을 밟아 가는 구나 했는데, 역시 그렇게 깡충깡충 팔방놀이하듯 가려 밟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특별한 직업도 없는데 뭐 먹고 사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천의 어떤 새끼 하나는 나하고 동갑인데 역시 그러고 돌아다닌다.


  아직도 무수한 어린이들이, 나는 민자당이 싫어요, 하고 죽어가는데, 단군상 뽀개지듯


  그 어린이들 동상이 무수히

  뽀개지고 있는데,


  參政權?

  참정권이 어디 있냐? 민주주의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집단무의식이 투영된

  허구고

  집단적 사기극이고 쇼비니즘 같은

  기실 관제 궐기대회고 규탄대회고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한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민주주의야말로

  새로운 폭력


  폭력적 이데올로기의 표상이다 열린

  사회건 닫힌 사회건 민주주의는

  인류의 마직막 敵이며

  공포의 制度며


  민주의의는 권력의

  페르소나 이

  지긋지긋한 가면무도회엔

  익명의 한 票가


  ‘꽝’ 나온 즉석복권처럼

  굴러다닐 뿐 섹스를 봐라


  어떻게 민주적인 섹스가

  가능하겠느냐 타협?

  약속?


  욕망 앞에서? 有權者?


  원숭이들이 고릴라들이

  퍽이나 민주적이겠다


  리얼리즘 논쟁일 뿐 父子之間에도

  고스톱 치다가 유혈사태가 나는데


  超人은 ‘初人’일 뿐 그

  아무 것도 아니다 한 평생

  사람들의 존경을 받다가 간 새끼도

  기실 아무 것도 아닌 새끼들도 많다

 

  존경도 다 유유상종의 소산

  성장기의 同一視 현상 웃기는

  신분 상승 의지의 유치한 發露


  칠뜨기들의

  외설이냐 예술이냐 논쟁처럼.



단지 ‘가난하지 않은’ 시인의 정치에 대한 혐오뿐일까?

오늘(2010.3.22) 숙직이다. 좀 더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그나저나 내게도 ꡔ무소유ꡕ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찾아서 팔까?

팔면 팔자 좀 필라나?

TRACKBACK ADDRESS : http://e-yuam.tistory.com/trackback/1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기택 시인의 시 두 편

분류없음 | 2010/02/04 13:42 | Posted by 二由菴

사무원

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장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損益管理臺帳經과 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수행에 너무 지극하게 정진한 나머지

전화를 걸다가 전화기 버튼 대신 계산기를 누르기도 했으며

귀가하다가 지하철 개찰구에 승차권 대신 열쇠를 밀어 넣었다고도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長座不立'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화석


그는 언제나 그 책상 그 의자에 붙어 있다.

등을 잔뜩 구부리고 얼굴을 책상에 박고 있다.

책상 위엔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두 손은 헤엄치듯 서류 사이를 돌아다닌다.

하루종일 쓰고 정리하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거북등 같은 옆구리에서

천천히 손 하나가 나와 수화기를 잡는다.

이어 억양과 액센트를 죽인 목소리가 나온다.

수화기를 놓은 손이 다시 거북등 속으로 들어간다.


때때로 그의 굽은 등만큼 배가 나온 상사가 온다.

지나가다 멈춰서서 갸웃거리며 무언가 묻는다.

등에서 작은 목 하나가 올라와 고개를 가로젓는다.

갑자기 배 나온 상사의 목소리가 커진다.

목은 얼른 등 속으로 들어가 나올 줄 모르고

굽어진 등 속으로 들어가 나올 줄 모르고

굽어진 등만 더 굽어져 자꾸 굽실거린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모래밭에서 한참 거북등을 굴려보다 싫증난 맹수처럼

배 나온 상사는 어슬렁어슬렁 제 정글로 돌아간다.


겨울이 지나고 창 안 가득 햇살이 들이치는 봄날,

한 젊은이가 사무실에 나타난다. 구둣소리 힘차다.

그의 옆으로 와 멈추더니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그는 기척이 없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붙어 있다.

젊은이가 더 크게 소리치며 굽은 등을 툭툭 친다.

먼지가 일어나고 등이 조금 부서진다.

젊은이는 세게 그의 몸을 흔들어댄다.

조그만 목이 흔들리다가 먼저 바닥에 굴러 떨어진다.

이어 어깨 한쪽이 온통 부서져내린다. 사람들이 몰려온다.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버린 그의 몸을 들어낸다.

재빠르게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하고 새 의자를 갖다놓는다.

TRACKBACK ADDRESS : http://e-yuam.tistory.com/trackback/12 관련글 쓰기

  1. スニーカー ニューバランス

    Tracked from スニーカー ニューバランス 2014/10/19 07:51  삭제

    길을 잃다 ::

  2. ティンバーランド 新作

    Tracked from ティンバーランド 新作 2014/10/21 15:47  삭제

    길을 잃다 ::

  3. new balance

    Tracked from new balance 2014/10/27 00:40  삭제

    길을 잃다 ::

  4. new balance

    Tracked from new balance 2014/10/29 01:34  삭제

    길을 잃다 ::

  5. new balance

    Tracked from new balance 2014/11/01 14:38  삭제

    길을 잃다 ::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